Nikon
이 이름의 브랜드와 함께 한지 벌써 몇년째일까...?
내가 처음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에게 건내받은 카메라는 미놀타의 X-300 이라는
기계식 수동 카메라 였다. 클래식한 기계식 외관과 철컥~ 하는 멋들어진 셔터음을 잊을 수 없다.
14살에 처음 카메라를 잡은 나는
X-300 과 MD 50mm F1.4 렌즈를 통해 파인더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법을 알았다.
그 카메라와 렌즈 그리고 필름과 내 시선이
만들어 내는 나만의 세상은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어느덧 사진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어느새 늘 카메라와 사진과 함께하던 여드름 투성이의 나는
왠지 더 좋은 카메라를 바라보게 되었고 점점 나의 미놀타 보다는
아버지의 FM2 를 몰래 들고 다니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X-300 이 부족했던 점은 없었다.
기계식 카메라 이지만 조리개 우선으로 촬영도 가능했었고 1/1000sec 에 불과한
최고 셔터 속도도 당시 스냅 사진 위주로 촬영하던 나에게는 충분했었다.
그런데 왜...
사실 별 이유는 없었다. 단지 니콘이라는 그 이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 F3 로 대표되는 니콘의 F 바디들은 마치 사진가의 표준인양 대부분의
사진 좀 한다 하는 사람들에게 니콘 카메라는 사진가의 상징이며 신앙과도 같았다.
나 역시 왜 라는 물음보다 그냥 니콘 이라는 이유 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니콘에 대한 열병을 앓던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 몰래 여름방학에 공사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내 생애 처음으로 산 카메라는 역시나 F3 였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나는 F3 의 진정한 성능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단순히 니콘 카메라의 최고봉 이라는 (물론 89 년에 F4 가 발매되었긴 하지만 너무 비쌌다)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한 나의 첫 니콘 플래그쉽 카메라 F3...
그렇게 니콘에 대한 갈망과 열병으로 내 품에 안긴 F3 와 MF 50.4 는 서서히 나에게 왜 당시 사람들이
니콘에 열광 하는지를 조금씩 알게 해 주었다.
절대적인 신뢰성...아마 그것이 바로 니콘이라는 한 일본 기업이
지금까지 90년 넘는 기간동안 이어온 단 하나의 과제 였을 것이다.
F3 를 사용하면서 나는 그 '신뢰성' 이라는 것에 대해 전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F3 는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물론 그 사이 도난 사고등으로 인해 현재의 F3 는 세번째 바디이다)
내 곁에서 오랜 시간 입시 포트폴리오 부터 여행의 동반자이자 내 일상의 돋보기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대학 사진과 진학 이후 90 년대 초반 카메라의 급격한 전자식 AF 바디의 확산과 보급으로 인해
나에게도 AF 바디가 필요 했고 (사실 굳이 필요하지는 않았다...이 또한 남들 하니까 하고 싶다는 이유가 컷던 것 같다.)
나는 주저 없이 AF 바디로도 니콘의 카메라를 선택했다.
F90
니콘의 1세대 AF 중급기 바디인 F90 은 F4 의 마이너 기종이었지만
F4 가 기계식과 전자식의 혼합형 이었던 반면에 F90 은 완전한 전자식 바디였다.
상단 LCD 창에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 감도 노출 게이지 등이 표시되었고 셔터 속도는
후면 다이얼로 조절하는 방식의 요즈음의 DSLR 과 매우 흡사한 조작 방식.
F90 과 함께 처음으로 AF 줌 렌즈인 24-120 F3.5-5.6 D 렌즈를 구입했다.
F90 과 24-120 은 나의 대학 시절 거의 모든 사진과 함께 했다.
부족함이 없었던 바디와 렌즈
사실 지금에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대단한 바디도 렌즈도 아니었지만
당시 나에게 F90 과 24-120 은 내가 촬영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촬영하기에 아무런
부족함도 없었고 F90 의 8분할 측광 방식의 TTL 노출계는 매우 정확했다.
(요즈음의 420분할 1005 분할 등에 비하면 8분할이라니...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중급기 였지만 플레그쉽 못지 않은 훌륭한 만듬새와 편리한 성능
지금은 비록 장식장에서 옛 추억을 생각하며 가끔 만져주는 바디가 되었지만 아마 이 바디와 렌즈로
내가 일 적인 촬영 외에 개인적인 촬영은 가장 많이 했을 것이다.
F90 을 주로 사용하던 약 5년간 셔터 박스를 3번이나 교체했고 촬영한 필름은 대략 2000 롤 이상이다.
이 바디와 렌즈로
찍은 수많은 사진들로 생애 첫 개인 전시회를 열었고
각종 국제 공모전에서 몇번을 상을 받았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
1996 년...
나는 니콘 필름 카메라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라고 칭하는
F5 를 당시돈으로 약 250 여 만원이라는 어마 어마한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 (아마 미쳤던거 같다...)
이 이름의 브랜드와 함께 한지 벌써 몇년째일까...?
내가 처음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에게 건내받은 카메라는 미놀타의 X-300 이라는
기계식 수동 카메라 였다. 클래식한 기계식 외관과 철컥~ 하는 멋들어진 셔터음을 잊을 수 없다.
14살에 처음 카메라를 잡은 나는
X-300 과 MD 50mm F1.4 렌즈를 통해 파인더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법을 알았다.
그 카메라와 렌즈 그리고 필름과 내 시선이
만들어 내는 나만의 세상은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어느덧 사진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어느새 늘 카메라와 사진과 함께하던 여드름 투성이의 나는
왠지 더 좋은 카메라를 바라보게 되었고 점점 나의 미놀타 보다는
아버지의 FM2 를 몰래 들고 다니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X-300 이 부족했던 점은 없었다.
기계식 카메라 이지만 조리개 우선으로 촬영도 가능했었고 1/1000sec 에 불과한
최고 셔터 속도도 당시 스냅 사진 위주로 촬영하던 나에게는 충분했었다.
그런데 왜...
사실 별 이유는 없었다. 단지 니콘이라는 그 이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 F3 로 대표되는 니콘의 F 바디들은 마치 사진가의 표준인양 대부분의
사진 좀 한다 하는 사람들에게 니콘 카메라는 사진가의 상징이며 신앙과도 같았다.
나 역시 왜 라는 물음보다 그냥 니콘 이라는 이유 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니콘에 대한 열병을 앓던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 몰래 여름방학에 공사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내 생애 처음으로 산 카메라는 역시나 F3 였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나는 F3 의 진정한 성능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단순히 니콘 카메라의 최고봉 이라는 (물론 89 년에 F4 가 발매되었긴 하지만 너무 비쌌다)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한 나의 첫 니콘 플래그쉽 카메라 F3...
그렇게 니콘에 대한 갈망과 열병으로 내 품에 안긴 F3 와 MF 50.4 는 서서히 나에게 왜 당시 사람들이
니콘에 열광 하는지를 조금씩 알게 해 주었다.
절대적인 신뢰성...아마 그것이 바로 니콘이라는 한 일본 기업이
지금까지 90년 넘는 기간동안 이어온 단 하나의 과제 였을 것이다.
F3 를 사용하면서 나는 그 '신뢰성' 이라는 것에 대해 전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F3 는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물론 그 사이 도난 사고등으로 인해 현재의 F3 는 세번째 바디이다)
내 곁에서 오랜 시간 입시 포트폴리오 부터 여행의 동반자이자 내 일상의 돋보기의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대학 사진과 진학 이후 90 년대 초반 카메라의 급격한 전자식 AF 바디의 확산과 보급으로 인해
나에게도 AF 바디가 필요 했고 (사실 굳이 필요하지는 않았다...이 또한 남들 하니까 하고 싶다는 이유가 컷던 것 같다.)
나는 주저 없이 AF 바디로도 니콘의 카메라를 선택했다.
F90
니콘의 1세대 AF 중급기 바디인 F90 은 F4 의 마이너 기종이었지만
F4 가 기계식과 전자식의 혼합형 이었던 반면에 F90 은 완전한 전자식 바디였다.
상단 LCD 창에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 감도 노출 게이지 등이 표시되었고 셔터 속도는
후면 다이얼로 조절하는 방식의 요즈음의 DSLR 과 매우 흡사한 조작 방식.
F90 과 함께 처음으로 AF 줌 렌즈인 24-120 F3.5-5.6 D 렌즈를 구입했다.
F90 과 24-120 은 나의 대학 시절 거의 모든 사진과 함께 했다.
부족함이 없었던 바디와 렌즈
사실 지금에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대단한 바디도 렌즈도 아니었지만
당시 나에게 F90 과 24-120 은 내가 촬영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촬영하기에 아무런
부족함도 없었고 F90 의 8분할 측광 방식의 TTL 노출계는 매우 정확했다.
(요즈음의 420분할 1005 분할 등에 비하면 8분할이라니...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중급기 였지만 플레그쉽 못지 않은 훌륭한 만듬새와 편리한 성능
지금은 비록 장식장에서 옛 추억을 생각하며 가끔 만져주는 바디가 되었지만 아마 이 바디와 렌즈로
내가 일 적인 촬영 외에 개인적인 촬영은 가장 많이 했을 것이다.
F90 을 주로 사용하던 약 5년간 셔터 박스를 3번이나 교체했고 촬영한 필름은 대략 2000 롤 이상이다.
이 바디와 렌즈로
찍은 수많은 사진들로 생애 첫 개인 전시회를 열었고
각종 국제 공모전에서 몇번을 상을 받았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
1996 년...
나는 니콘 필름 카메라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라고 칭하는
F5 를 당시돈으로 약 250 여 만원이라는 어마 어마한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 (아마 미쳤던거 같다...)
당시에 F5 는 정말 최강이었다.
최초로 1005 분할 3D-RGB TTL 측광을 채용하고 (현재까지도 니콘의 DSLR 중.고급기 이상에 채용되는 측광 방식이다.)
최대 8 연사의 놀라운 연속 촬영 속도 (사실 나는 필름을 넣고 8 연사를 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니콘 한자릿수 F 바디의 상징과 같은 분리형 파인더 (솔직히 별로 쓸 일은 없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면 F5 는
어떤 분의 말을 빌려 쓰자면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있는 마지막 카메라"
즉 니콘의 장인 정신이 그대로 배어있는 최고의 카메라이다.
당시 F90 을 쓰고 있던 나에게 F5 라는 카메라는 로망이었고 젊은 청년의 꿈틀대는 소유욕의 정점이었다.
그러던 10월의 어느 날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털어 남대문의 한 카메라 샵에서 F5 를 들고 오던
나의 주머니는 가벼웠고 오른손과 마음은 가득 채워졌다.
사실 F5 는 좋았지만 불편함도 많았다.
세로그립 일체형으로 만들어 졌지만 세로 그립 부분에는 오직 셔터 버튼 뿐
조리개나 셔터 다이얼이 없어서 조작하기가 매우 불편했고
1.2kg 의 소형 카메라 치고는 꽤 부담스러운 무게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복학을 하고 카메라를 물어보는 친구에게는
F100 과 세로그립을 추천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F5 는 그렇게 내 소유의 세번째 F 바디로 수많은 사진을 함께 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신뢰성을 잃지 않으며 대학 졸업 후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나의 손과 눈이 되었다.
그리고 유학
1998 년 약 2년 반의 광고 스튜디오 어시스트 일을 접고
나는 미국 유학을 떠났다. 거창한 미래를 바라거나 대단한 성공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하는 광고 사진의 최정상 이라 불리우는 그곳을 느끼고 싶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사진을 경험하고 싶었다.
3년간의 유학 생활과 3년간의 현지 스튜디오 생활
그 가운데 나는 니콘과의 잠시 동안의 이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중형 카메라나 소형 RF 카메라 등을 다루면서
니콘이외의 브랜드를 써 보기는 했었지만
본격적인 소형 SLR 카메라에서 나의 주력 카메라가 니콘이 아닌 타사의 카메라가 된 것이다.
바로 캐논의 1VHs..
최초로 1005 분할 3D-RGB TTL 측광을 채용하고 (현재까지도 니콘의 DSLR 중.고급기 이상에 채용되는 측광 방식이다.)
최대 8 연사의 놀라운 연속 촬영 속도 (사실 나는 필름을 넣고 8 연사를 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니콘 한자릿수 F 바디의 상징과 같은 분리형 파인더 (솔직히 별로 쓸 일은 없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면 F5 는
어떤 분의 말을 빌려 쓰자면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있는 마지막 카메라"
즉 니콘의 장인 정신이 그대로 배어있는 최고의 카메라이다.
당시 F90 을 쓰고 있던 나에게 F5 라는 카메라는 로망이었고 젊은 청년의 꿈틀대는 소유욕의 정점이었다.
그러던 10월의 어느 날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털어 남대문의 한 카메라 샵에서 F5 를 들고 오던
나의 주머니는 가벼웠고 오른손과 마음은 가득 채워졌다.
사실 F5 는 좋았지만 불편함도 많았다.
세로그립 일체형으로 만들어 졌지만 세로 그립 부분에는 오직 셔터 버튼 뿐
조리개나 셔터 다이얼이 없어서 조작하기가 매우 불편했고
1.2kg 의 소형 카메라 치고는 꽤 부담스러운 무게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복학을 하고 카메라를 물어보는 친구에게는
F100 과 세로그립을 추천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F5 는 그렇게 내 소유의 세번째 F 바디로 수많은 사진을 함께 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신뢰성을 잃지 않으며 대학 졸업 후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나의 손과 눈이 되었다.
그리고 유학
1998 년 약 2년 반의 광고 스튜디오 어시스트 일을 접고
나는 미국 유학을 떠났다. 거창한 미래를 바라거나 대단한 성공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하는 광고 사진의 최정상 이라 불리우는 그곳을 느끼고 싶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사진을 경험하고 싶었다.
3년간의 유학 생활과 3년간의 현지 스튜디오 생활
그 가운데 나는 니콘과의 잠시 동안의 이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중형 카메라나 소형 RF 카메라 등을 다루면서
니콘이외의 브랜드를 써 보기는 했었지만
본격적인 소형 SLR 카메라에서 나의 주력 카메라가 니콘이 아닌 타사의 카메라가 된 것이다.
바로 캐논의 1VHs..
사실 이전에도 캐논의 EF 마운트를 채용한 전자식 바디 중 베스트 셀러 였던 EOS-5 를 써 보았지만
초음파 모터의 정숙하고 빠른 AF 등은 좋았지만 허술한 만듬새와 유명 무실했던 아이 포인트 기능. 잦은 잔고장의 낮은 내구성 등
나에게 EOS-5 라는 캐논의 EF 바디는 그저 그런 카메라 정도 였다.
하지만 2000 년 출시된 EOS-1Vhs 는 전혀 달랐다.
거의 10 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 보다라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아니
이미 이 때 캐논 EOS 1 시리즈 플레그 쉽 바디는 완성되었고 지금까지 기본적인 점은 변함이 없을만큼 완벽했다.
45 개 에 달하는 엄청난 측거점 (최신의 DSLR 과 비교해도 최상급이다)
뛰어난 만듬새와 엄청난 성능
이미 1999 년 니콘에서는 D1 이라는 니콘 최초의 본격 DSLR 을 발매 하였지만
당시로서는 어마 어마한 가격 (바디만 1200 만원) 으로 감히 구입은 엄두도 못 할 바디였고
이때까지도 필름이 주력이었기 때문에 캐논 1Vhs 는 최고의 소형 35mm SLR 카메라였다.
그렇게 나는 잠시 니콘을 놓고 캐논 EOS 카메라를 잡게 되었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캐논과의 인연이 그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언제든 니콘에서 더 좋은 카메라가 나온다면 다시 니콘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금새가 될 것 같았던 니콘으로의 회귀는 그리 빨리 이루어 지지 않았다.
2002 년 이후 본격적인 DSLR 의 보급이 가속화 되었고
필름 카메라 시절 제왕이었던 니콘은
자체적인 이미징 기술의 부족함으로 인해 기존에 카메라 사업은 물론 각종 오피스 기기 및 영상 사업을
함께 하였던 캐논의 풍부한 이미징 기술을 앞세운 뛰어난 DSLR 앞에 맥없이 무너지며
대중적 소형 SLR 카메라의 왕좌를 거침없이 내주고 말았다.
물론 나 또한 니콘을 좋아하는 유저이기 이전에 사진을 좋아하고 업으로 하고 살아가는
사진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니콘이 아닌 캐논의 DSLR 을 선택하였고 어느덧 그동안 니콘의 필름 SLR 을 사용하면서
하나 둘 사들였던 각종 Nikkor 렌즈들은 캐논의 각종 EF 렌즈들이 20D / 1D mark II / 1Ds mark II 등에 열심히
마운트 되며 나의 사진들을 담당하게 되던 그 때 제습함 한켠에서 조용히 침묵의 잠을 자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쉽게 그것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캐논의 뛰어난 1VHs 와 DSLR 들을 사용하면서도 니콘 카메라들에 비해 아쉬운 만듬새와
부족한 신뢰성은 다시 한번 니콘이 패자의 내리막길에서 치고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렇게...나는 다른 브랜드의 카메라를 사용하며 니콘의 부활을 기다렸다
그리고 2004 년
마침내 니콘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D70 이라는 보급형 DSLR 로 말이다.
사실 이전에도 D1X 나 D100 등 중.고급 카메라들이 발매 되었지만
동급의 캐논 카메라들에 비해 다소 많은 부분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부족한 이미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D70 이 등장했다.
당시로는 꽤 저렴한 가격에 매우 뛰어난 이미지 성능으로 말이다.
나는 너무나 반가웠다. 하지만 무조건 믿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니콘은 DSLR 에서
나를 실망시켰었고 필름 카메라 시절 주었던 최고의 기계적 신뢰성을 DSLR 의 이미지적 의심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당시 DSLR 에 관심을 보이던 친구에게 D70 의 구입을 권유 했다. (아...참 치사하다 나도 ㅡ_ㅡa)
그리고 빌려서 사용해 보았다...좋았다...타사의 DSLR 에 비해서 뒤지지도 않았고 매우 좋았다.
드디어 니콘의 귀환인가...였다.
D70 은 2004 년 후속 업그레이드 기인 70s 는 2005 년 올해의 카메라 상을 받으며
괴멸 직전이던 니콘을 기적적으로 부활시켰다.
그리고 D70 으로 니콘의 이미지 성능의 발전을 지켜본 나는 2005 년 말 나의 첫 니콘 DSLR 을 구입했다.
D200
중급기의 황태자 / 준.플레그쉽 DSLR 등 온갖 찬사를 받은 니콘 DSLR 의 명기
1000 만 화소의 고화소 뛰어난 이미지와 탁월한 성능
D200 은 정말 좋았다. 마치 십수년전 F90 을 접했을 때처럼 D200 은 부족함이 없었다.
조루 배터리다 고감도 노이즈가 많다 등등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짧은 배터리는 조금 에로 사항이 되기는 했다 ㅡ_ㅡ;;; )
D200 은 충분히 뛰어났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요즘에도 나는 니콘의 카메라를 제대로 알고 싶다 라고 하는 이들에게
아주 자신있게 추천하는 카메라는 바로 D200 이다.
좋았다. 그동안의 실망스러웠던 니콘의 DSLR 에 대한 실망감을 기대감으로 다시 바꾸어 줄 만큼...
그리고 D200 을 사용하면서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그녀를 만났다.
D200 은 그녀와 나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의 순간 순간을 남겨준 아주 고마운 카메라이다.
나에게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그녀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D200 은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 D200 은 그녀의 손에 들려있다.
D200 이후 나는 니콘 DSLR 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 냈다.
그리고 나의 일상 속에서 더 작고 가볍게 언제나 가방과 한쪽 손에 들려질 카메라
그녀와 함께 니콘을 즐기기 위한 카메라로 선택한 D40X
D40 도 매우 뛰어났지만 D40 의 아쉬운 점이었던 몇가지를 모두 해결한 D40 의 완성형 바디인 40X
아주 만족스러운 카메라이고 지금도 나의 가장 가까이에서 다양한 내 일상 속 모습들을
담아내고 온갖 사진들을 만들어 주는 카메라이다.
혹자들은 바디 AF 모터가 없는 고자 바디라는 둥 그래봐야 보급기 라는 둥 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편하고 가볍게 일상 속 다양한 내 시선이 머무는 것들을 촬영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카메라.
그리고 2007 년
니콘 DSLR 최초로 35mm Full Frame 사이즈의 이미지 센서를 탑재한 니콘의 3번째 DSLR 플래그쉽
D3 가 출시되었다.
유효화소 1230 만
최신 FF DSLR 로는 다소 적다(?) 고 느껴질 수 있는 이미지 사이즈 이지만
유효감도는 무려 100-25600 이라는 경이로운 고감도
ISO 25600
지금까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치였다.
더 진보된 이미지 풍부한 DR 과 계조 뛰어난 고감도 저노이즈 등으로
D3 는 출시된지 약 1년 여만에 전세계 프레스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고
나는 2008 년 초 D3 를 구입했다.
D3 는 놀라웠다. 지금까지 필름시절부터 습관적으로 생각해 왔던
사진 촬영의 감도에 대한 모든 관념과 개념을 바꾸어 버렸다.
언제 어디서라도 D3 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D3 는 2009 년 4월 내 생애 가장 소중한 만남의 순간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기록해 주었다.
D3 가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어두운 분만실에서의
내 아이와 나와의 첫 만남의 순간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셔터를 눌렀지만
D3 는 그 순간을 너무나 정확히 기록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니콘의 카메라에 실망하지 않는다.
20 여년전 나의 첫 플레그쉽 카메라였던 F3 부터
나를 부모로 만들어 준 순간을 담아낸 D3 까지
니콘의 카메라는 길지 않은 나의 삶에서 내 눈이었고 내 손이었다.
물론 나는 현재 니콘의 카메라만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니콘의 카메라가 최고라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적어도 사진가가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드는 순간
니콘의 카메라는 사진가에게 최고의 신뢰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전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지금의 최신 DSLR 까지 변하지 않는
니콘 이라는 이름의 상징이고 약속일 것이다.
.
Photo n Write
by Unan
니콘의 카메라는 사진가에게 최고의 신뢰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전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 지금의 최신 DSLR 까지 변하지 않는
니콘 이라는 이름의 상징이고 약속일 것이다.
.
Photo n Write
by Unan
'그저 그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끈질긴...인연인가..악연인가 나의 니콘 & 캐논... (0) | 2009.07.01 |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1) | 2009.05.25 |
Happy BirthDay Sin-My Hwang ^o^/ (0) | 2009.01.01 |
인물 사진 보정~!! (0) | 2008.11.03 |
"당신이 알고 있는 니콘, 모르고 있는 니콘" - 아베 히데유키 (0) | 2008.09.09 |